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문단 편집) === 급진적인 근대 민족국가 추진의 후유증 === 위 이야기의 연장선상인데 케말은 튀르키예인의 통합이란 명목하에 튀르키예 내에 아르메니아인들이나 [[쿠르드족]]들 같은 소수민족들의 문화탄압 및 그들의 언어와 생활양식을 파괴시키는 데 열과 성의를 다 기울였다. 심지어 쿠르드족의 경우 아타튀르크는 쿠르드족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아타튀르크의 민족주의에 관한 시각에 대해 서술했지만, 아타튀르크가 도입한 튀르크 민족주의의 대상은 인종, 민족, 종교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냥 튀르키예 땅에 살면 튀르키예인인 것이고, 튀르키예어로 하면 튀르크(Türk)이다. 때문에 소수민족에 대한 법령을 만들자고 공화국 초대 총리 [[이스메트 이뇌뉘]]가 제안했을 때, 아타튀르크는 이를 거절하면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튀르키예인이고 우리 민족이고 우리 국민인데 왜 민족으로 구분해서 법을 집행하느냐?"고 되물었다. 튀르키예 공화국 초대 총리이자, 훗날 아타튀르크의 뒤를 이어 2대 대통령이 되는 이뇌뉘는 [[쿠르드]]계 출신이다. 즉, 아타튀르크를 무슨 근대적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 비난하는 것은 사실 역사왜곡에 가까우며, 아타튀르크는 오히려 붕괴한 '오스만인'으로서 정체성과 여전히 형성 작업 중인 '튀르키예인' 정체성이란 아직 다가오지 않았던 미래 사이 수천년간 엄청나게 많은 문화들이 왔다간 아나톨리아 같은 환경에선 도저히 일반적으로 언어, 풍습, 공유하는 역사 등으로 규정되는 민족적 정체성을 적용할수 없다는 걸 인식했다. 따라서 오히려 저런 민족지학적(ethnographic)한 요소를 아예 배제하고 "[[중화민족|그냥 현행 튀르키예 땅 안에 살면 무조건 튀르키예 민족임]]"이란 아나톨리아의 역사적 환경을 상당히 직접으로 의식한 듯한 국가주의적 민족 관념을 추구한 것이다. 이를 아타튀르크를 호의적으로 보는, 말 그대로 이런 일련의 민족의식 형성 작업의 성공적인 결과물들인 현대 튀르키예인들은 이런 저런 민족주의적 광풍에 사방으로 찢겨저 나갈 뻔한 조국을 근대적인 방법으로 묶어놓은 말 그대로 '튀르키예인의 아버지'소리 들을 법한 신의 한 수로 보며 칭송할 법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일방적인 국가주의적 민족 형성 과정에 분리주의 사상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민족 정체성을 가진 소수민족에게는 아예 본인들의 '''독자적인 민족 의식을 가질 자유'''마저도 박살내려고 했던 억압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총론적으로 보면 이런 아타튀르크가 추구한 민족국가 형성 작업에 대한 극적으로 상반되는 평가는 아타튀르크 본인의 근대적 튀르키예 민족국가 만들기 프로젝트가 큰 부분은 성공했어도, 결국 타우루스와 캅카스 산맥이란 험준한 자연환경이 이 작업을 더디게 한 현대 쿠르드인 다수 지방에선 미완의 작업으로 남아 생기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케말은 근대 튀르크족의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그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정체성을 부정했다. [[오스만어]]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이른바 '언어정화 운동'을 통해 현대 [[튀르키예어]]에서 [[아랍어]], [[페르시아어]], [[그리스어]] 같은 외래 언어의 잔재를 없애버린 것도 이 시절의 일. 위에서 나온 유사역사학에 경도된 것도 '이슬람교를 믿는 튀르크를 중심으로 한 다민족 제국' 오스만 제국이 외세, 서구한테 밀렸으니 이슬람에 경도된 오스만 제국의 역사는 청산되어야 할 과거의 부정적인 요소이며 새로운 튀르키예 공화국에선 배제되어야 할 적폐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대신 케말이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과거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던 [[흉노]], [[돌궐]] 같은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역사를 모조리 튀르키예의 것으로 치는 태양어론 같은 유사역사학이었던 것이고 아타튀르크는 튀르키예 [[민족주의]]를 과도하게 추구하여 [[태양어론]] 같은 [[유사역사학]]에 어느 정도 경도되었다. 케말 정신의 반대자라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괜히 '튀르키예는 오스만 제국이라는 영광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라고 선전하고 케말이 저지른 인종청소를 사과하고 다니는 게 아니다. 케말의 후예들인 튀르키예의 군부 세력은 이런 케말의 입장을 계승하고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오스만적인 것, 이슬람적인 것을 배격하고 세속주의를 명분으로 튀르키예에 들어선 민주정부가 조금이라도 이슬람적인 모습을 보일 때마다 민주정부를 박살내 왔고 한국의 군사독재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지금 에르도안의 인기는 튀르키예 경제의 회생과 더불어 이런 군부 체제에 대한 튀르키예 시민들의 염증도 일정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튀르키예 시민들 자체가 원체 과격한 이슬람을 배제하는 입장인데도.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사건|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일반 튀르키예 시민들의 아타튀르크에 대한 존경은 여전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인 케말주의, 튀르키예 군부독재의 요소 등에 대해서는 이것이 튀르키예 현대사에 무조건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보는 게 튀르키예 시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